‘에버그린 스타일’의 부상 – 트렌드를 초월한 클래식 룩

1. 일시적 유행을 넘어서: ‘에버그린 스타일’의 개념과 가치

오늘날 패션은 단기적인 유행과 무한한 콘텐츠 속도에 익숙해졌지만, 이 흐름 속에서 더욱 빛나는 패션 코드가 있다. 바로 ‘에버그린 스타일(Evergreen Style)’이다. ‘에버그린’이라는 말이 본래 ‘사시사철 푸른 나무’를 뜻하듯, 이 스타일은 시대를 타지 않고 늘 세련되며 변함없는 가치를 지닌다. 급변하는 트렌드와 소비 주기에 반기를 들며, 심플하고 정제된 실루엣, 베이식한 컬러, 깔끔한 소재와 구조적인 디자인이 중심을 이룬다. 에버그린 스타일은 단순히 클래식 복고의 재현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개인의 품격’을 반영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패션 소비자들은 “지속 가능한 소비”, “오래 입을 수 있는 옷”, “지금 사도 후회하지 않는 디자인”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팬데믹 이후 변화한 소비 패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동시에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모두가 실용성과 개성의 균형을 중시하게 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오버한 트렌드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아이템이 다시 주목받는 이 현상은, ‘에버그린 스타일’이라는 개념을 패션 시장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블레이저, 흰 셔츠, 블랙 팬츠, 플레인한 니트, 롱 코트 같은 스테디 아이템들이 다시 ‘핫’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에버그린 스타일은 ‘균형감’이라는 중요한 미학적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눈에 띄는 절제된 멋, 유행이 지난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는 특유의 품격은 이 스타일을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브랜드 레벨에서도 구찌·마르지엘라·에르메스처럼 정통을 고수하거나, 유니클로·코스(COS)·무지(MUJI) 같은 미니멀 브랜드가 에버그린 스타일의 실천적 모델로 재조명되고 있다.

2. ‘트렌드’를 이끄는 비트렌디 전략: 왜 지금 에버그린인가?

패션계가 에버그린 스타일에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빠르게 회전하는 패션 주기 속에서 ‘비트렌디한 전략’이야말로 진정한 트렌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패션 브랜드는 더 이상 ‘이번 시즌만 팔릴 옷’을 만들지 않는다. 이제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컬렉션을 중심으로 디자인을 구성한다. 바로 여기에서 에버그린 스타일의 전략적 강점이 드러난다.

‘꾸준함’은 예전에는 ‘지루함’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신뢰감’과 ‘프리미엄’의 상징이 되었다. 예를 들어, 매 시즌 유행 컬러를 쫓기보다는 블랙, 그레이, 네이비, 화이트 등 안정적인 컬러 조합이 더 선호되고 있으며, 디자인 또한 레이어링이 용이한 심플한 형태가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소비자 개인의 옷장 구성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캡슐 옷장(Capsule Wardrobe)’이 대표적인 예이다. 계절마다 다르게 입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옷을 소장하되, 모두 잘 어울리도록 구성하는 것이며, 이는 곧 에버그린 스타일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또한 에버그린 스타일은 사회적 이미지 전략의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기업 CEO, 정치인, 교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까지 대부분이 유행에 민감한 복장보다는 깔끔하고 절제된 클래식 수트를 선호한다. 이는 단지 격식을 갖추는 차원을 넘어서 ‘정체성의 안정감’을 전달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즉, 에버그린 스타일은 외적 이미지로 내면의 신뢰도를 구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3. 브랜드, 인플루언서, 소비자: 에버그린 스타일의 확산 구조

이러한 흐름은 브랜드와 인플루언서, 일반 소비자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브랜드는 이제 ‘오래가는 아이템’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전개한다. 예를 들어, COS는 ‘Timeless Pieces’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두어 오랜 시간 사랑받는 베이식 아이템을 분류하고, 유니클로는 ‘LifeWear’라는 콘셉트로 실용성과 내구성을 강조하며 고정 고객층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명품 브랜드들도 매 시즌 전통적인 실루엣을 기본으로 하여 시즌별 아이템에 트렌드를 얹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통해 에버그린 감성을 잃지 않으려 한다.

인플루언서들 또한 에버그린 스타일을 통해 ‘룩북’과 ‘데일리룩’을 선보인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단순히 예쁜 옷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몇 년째 입는 아이템’, ‘계절마다 활용 가능한 셔츠’, ‘엄마가 입고도 예쁜 옷’ 등을 보여주며 신뢰를 얻는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 광고 이상의 설득력을 가지며, 소비자에게 실용성과 미적 가치를 모두 제공하는 가이드로 기능한다.

소비자의 측면에서는 ‘지속 가능한 소비’와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태도가 핵심이다. 옷을 자주 바꾸기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소재와 균형 잡힌 디자인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특히 30~40대 이상의 소비층은 물론, 최근에는 Z세대조차 ‘빈티지’와 ‘클래식’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며, 타임리스 룩을 탐색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에버그린 스타일이 단순한 패션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4. 타임리스의 재정의: 미래형 에버그린 스타일의 진화

에버그린 스타일은 과거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미래를 향한 진화 중이다. 전통적인 실루엣을 지키면서도 기능성 소재, AI 스타일 추천, 3D 피팅 서비스, 가상착장(Virtual Try-on) 기술 등을 통해 에버그린 아이템은 기술적 진보와 맞물리며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곧 패션의 ‘기능적 클래식’ 시대를 여는 징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셔츠 하나를 입더라도 흡습속건 기능이 있는 원단, 구김이 덜 가는 소재, 체형 보정 기능을 가진 실루엣 등을 통해 에버그린 아이템이 훨씬 현대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AI 패션 플랫폼은 사용자의 소비 패턴과 체형, 취향을 분석해 유행과 무관하게 잘 어울리는 기본 아이템을 추천하기도 한다. 이는 개인화된 에버그린 스타일을 가능하게 하며, 동시에 지속 가능한 소비 흐름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에버그린 스타일은 단지 ‘패션’만의 영역을 넘어선다. 이는 ‘철학적 태도’이며, ‘삶의 스타일’이다. 변화가 빠른 시대일수록, 오래가는 것의 가치는 더 커진다. 개인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스타일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금, 에버그린 스타일은 오히려 그 유연함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모든 세대와 문화권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패션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패션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가장 오래된 것 속에서 가장 새로운 가치를 찾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