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 뷰티 트렌드 분석

패션 산업의 넷제로 목표와 실천 사례

트렌드이슈모아 2025. 5. 28. 09:55

1. 넷제로 선언, 왜 패션 산업에서 중요한가?

패션 산업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염을 많이 유발하는 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가 패션 산업에서 비롯되며, 이는 국제 항공 및 해운을 합친 것보다 많다. 뿐만 아니라 전체 산업용 수자원의 20%를 소비하고 있으며, 연간 9,200만 톤의 폐의류를 발생시키는 등, 환경적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패션 업계가 넷제로(net-zero) 선언을 내세우는 것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서 기업의 생존 전략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넷제로란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제거량을 뺀 수치가 0이 되도록 만든다’는 개념으로, 기업은 탄소 배출을 최대한 줄이는 동시에 남은 배출은 다른 방식(예: 탄소 흡수원, 탄소 배출권 구매 등)을 통해 상쇄해야 한다. 특히 패션 산업은 공급망이 복잡하고 생산 단계에서의 배출량이 크기 때문에, 제품 기획부터 유통, 소비, 폐기 단계까지 전 과정에 걸친 통합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은 자사의 탄소 발자국을 분석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과학 기반 목표’(SBTi: 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를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ESG 경영, 소비자의 인식 변화, 정부의 규제 강화 등과 맞물리면서 넷제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잡고 있다.

 

패션 산업의 넷제로 목표와 실천 사례


2. 주요 글로벌 브랜드의 넷제로 실천 전략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패션 브랜드들은 다양한 실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스웨덴의 H&M은 2040년까지 전사적으로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유기농 또는 재활용 원단 사용 비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도입, 저탄소 물류 시스템 전환 등을 추진 중이다. 또한 의류 수거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와 함께 지속 가능한 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H&M은 리사이클을 위한 자체 물류 기반을 마련하고, 디지털 추적 시스템을 통해 각 제품의 탄소 발자국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한편,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샤넬은 비교적 보수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 선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샤넬은 2025년까지 자사 운영에서 탄소 배출을 50% 감축하고, 2030년까지 공급망 전반에서 탄소 배출을 4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지속 가능한 원자재 사용, 친환경 포장재 채택, 전기차 운송 시스템 등을 도입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아디다스는 ‘미래를 위한 러닝화’ 프로젝트를 통해 100% 재활용 가능한 신발을 개발하고 있으며, 나이키는 폐소재를 재활용해 제작한 ‘스페이스 히피’ 라인을 선보여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글로벌 브랜드들의 움직임은 넷제로 달성의 구체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으며, 중소 패션기업들에게도 유의미한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 특히 다양한 기술과 인프라가 투입된 이들 브랜드의 사례는 지속 가능성과 동시에 ‘패션성’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해법으로 평가된다.

3. 친환경 기술 및 소재 혁신의 실질 적용

넷제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선 생산 공정의 효율화 외에도 기술과 소재의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기술은 ‘디지털 패션 시뮬레이션’이다. CLO, Browzwear 등의 3D 의상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샘플 제작 없이 디자인 검토가 가능해 원단 낭비와 운송으로 인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자라(ZARA)는 이러한 기술을 적극 도입해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탄소 절감을 실천하고 있으며, 생산 주기 또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천연소재 대체 연구 역시 활발하다. 식물성 원단 중 하나로 떠오르는 파인애플 가죽(Piñatex), 버섯 기반 가죽(Mylo), 해조류 섬유(AlgaFibre) 등은 동물성 가죽의 대안으로서 기능성과 친환경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이 외에도 페트병을 재활용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폐어망에서 추출한 나일론인 이코닐(Econyl) 등 다양한 지속가능 소재가 실제 컬렉션에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친환경 소재들은 더 이상 실험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대중 패션으로 확산 중이다. 루이비통, 구찌 등 하이엔드 브랜드는 물론이고, 유니클로와 같은 대중 브랜드까지도 리사이클 소재를 핵심 원단으로 채택하는 추세다. 특히 이런 소재들은 브랜드의 ‘녹색 마케팅’에 활용되며, 소비자에게 브랜드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즉, 단순한 친환경을 넘어서 브랜드 차별화 요소로 작용하며 넷제로 달성의 실질적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4. 소비자와 함께 만드는 넷제로 패션 생태계

패션 산업의 넷제로 실천은 브랜드의 노력만으로 완성되기 어렵다. 소비자의 인식 변화와 참여 없이는 그 지속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윤리적 소비, 그린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넷제로를 위한 소비행동’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중고 의류를 구매하거나 리셀(re-sell)하는 문화, 친환경 소재 제품을 우선적으로 고르는 소비 패턴, 브랜드의 ESG 평가를 참고하는 구매 결정 등은 넷제로 목표 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소비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H&M의 Garment Collecting 프로그램, 파타고니아의 Worn Wear 프로젝트, 29CM와 무신사의 리사이클 챌린지 등은 소비자가 일상 속에서 지속 가능성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설계된 대표적 예시다. 이 밖에도 브랜드들은 자사 홈페이지에 탄소 배출량을 표기하거나, 생산 원산지 및 제작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지속가능성 라벨링’을 도입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패션 산업의 넷제로는 브랜드, 생산자, 소비자, 그리고 정책 입안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다층적 생태계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 ESG 공시 의무화, 탄소세 부과, 친환경 제품 인증제도 등 제도적 기반 또한 강화되는 가운데, 넷제로는 더 이상 이상적인 목표가 아닌 ‘현실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30년, 2040년이라는 시간표는 멀게만 느껴질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고른 옷 한 벌이 이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부터 넷제로의 여정은 시작된다.